189 민족교육을 키우고 살리려는 사람들의 피와 땀과 눈물

오사카 등 간사이지역은 일본에서 민족교육이 가장 활발한 곳이다. 한국계 민족학교 4개 중 3개가 간사이지역(오사카 2, 교토 1)에 있다. 이외도 2006년 오사카부 이바라키시에 새로 생긴 코리아국제학원도 있다. 또 오사카부의 공립 초중학교에 설치된 ‘민족학급’에서 3천여명의 학생이 50여명의 민족강사로부터 우리말, 우리문화, 우리역사를 배우고 있다.

간사이지역에 민족교육이 활발한 것은 재일동포가 많이 살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자동적으로 민족교육이 활발해진 것은 아니다. 민족교육을 키우고 살리려는 많은 사람의 피와 땀, 눈물이 있었다.

대표적인 사건이 1948년 재일동포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선학교 폐쇄령에 맞서, 고베와 오사카를 중심으로 벌어진 한신교육 투쟁이다. 당시 오사카부경 앞에서 항의 시위를 하던 중 일본경찰의 총격에 김태일 학생이 사망하기도 했다.

지금도 민족교육 현장 곳곳에서는 동화 압력에 맞서 한국의 뿌리를 지키려는 많은 사람들의 힘든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간사이지역의 민족교육은 이렇게 물밑에서 노력하는 교사, 활동가 등의 힘으로 지탱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말연시를 맞이하여 동포사회의 화합과 발전을 위해 기여한 사람들에게 총영사 표창을 주시로 했다. 이 중 가장 많은 수의 교육 분야의 12명에게는, 1월21일 별도의 자리를 마련해 표창장 수여식을 했다.

수상자를 크게 나누면, 민족학급 분야의 5명, 민족학교 분야 3명, 한글교육 분야 4명이다. 모든 분들이 절절한 사연이 있지만, 대표로 인사를 한 4 분의 인사말만 소개한다.

박령희, 민족교육추진연락회

“이쿠노에서 자란 동포2세다. 일본학교에 다니면서 많은 차별을 받았다. 어른이 되면 차별하지 않는 선생이 되자고 결심했다. 그때의 결심을 실천에 옮긴 것이 민족강사의 길이다. 민족강사가 되서는 도리어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고용철, 동포보호자연락회

“민족학교 존재를 알게 된 것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다. 그때부터 한국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해 올해로 20년이 되었다. 동포보호자회는 어른들의 민족학급이랄 수 있고, 오늘 내가 받는 표창장은 새 인생을 시작했던 20년을 기념하는 성인식과 같다. 앞으로도 뿌리를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실천하면서 살겠다.”

김주은, 금강학교 교사

“베이징 한국학교 파견교사로 있을 때 오사카의 민족학교 존재를 알게 된 것이 지금의 인연이 됐다. 처음 왔을 때는 민족교육이라는 개념이 뭔지도 잘 몰랐다. 이제는 민족교육의 중요성을 잘 알게 되었고, 학교와 동포사회, 총영사관과 교육원과 잘 협력해야 민족교육이 제자리를 잡아갈 수 있다는 경험으로 깨우쳤다.”

백전자, 시가민단 호세지부 사무원

“집이 바로 민단지부와 가까운 관계로 1978년부터 지부 사무국에서 일하고 있다. 30대의 어머니로 시작한 일이 42년의 일상이 되었다. 지부에서 첫 7년간 교육원 선생으로부터 배운 한국말로 지부에서 4개의 한글교실 선생을 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 은퇴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상을 받아 새 힘을 받았다. 은퇴를 재고해 보겠다.”

시상식이 끝난 뒤 함께 저녁을 하면서 다른 분들의 사연도 들었으나 다 옮기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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