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2014.07.22

민갑완 회고록 낸 조카 민병휘
고종의 일곱째 아들로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였던 영친왕 이은(1897~1970)이 일본 여성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이방자)와 정략결혼하기 전에 황태자비로 책봉된 여성이 있었다. 고 민갑완(1897~1968)이다.세간의 기억에서 사라졌던 이 여성의 회고록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의 정혼녀>(지식공작소 펴냄)가 다시 출간됐다.

1962년 <백년 한>(문선각 펴냄)이란 제목으로 출간됐다 절판됐으니 근 52년 만에 다시 빛을 보는 셈이다.지난 15일 책을 새로이 세상에 내놓는 민갑완의 장조카 민병휘(73)씨와 일본어판을 낼 요량으로 번역을 진행중인 일본인 오구리 아키라(64 chief program officer, the Japan Forum)를 만났다.“고모님(민갑완)이 평생 남 원망하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제가 1941년생인데 어릴 적부터 고모 품에서 컸습니다. 요만큼도 남을 원망하지 않았어요. 남의 나라 일본마저도 나쁘게 말씀 못하셨어요. ‘이은 전하도 마사코 여사도 나처럼 불행한 분’이라고만 했어요. 언젠가 신문에 난 마사코 여사 기사를 보고는 ‘마사코 여사나 나나 똑같다. 두 사람 다 역사의 희생양이다. 모든 게 내 운명이다’ 하였지요.”(민병휘)

민갑완은 1898년 고종의 특명전권공사로 임명되어 영국·미국·벨기에 공사로 일했던 구한말 외교관 민영돈(1863~1918)의 딸이다. 민영돈은 같은 여흥 민씨인 명성황후의 먼 조카뻘로, 을사늑약(1905) 뒤 고종의 독립 호소 밀지를 해외에 전하기도 했다. 민갑완은 열한살이던 1907년 3월 150여명의 후보자를 물리치고 이은의 황태자비(세자비)로 간택됐으나, 그해 말 이은이 일본으로 끌려간 뒤 일제에 의해 파혼당하고 평생 홀로 살았다.

상하이 시절 중국식 옷차림의 민갑완. 눈에 띄지 않으려 검은 옷을 즐겨 입었다 한다. 지식공작소 제공

1962년 화제작 ‘백년 한’ 재출간 “왕 될 분이었으니 결혼 못한다
이방자나 나나 희생양이라 하셔 
오구리 선생 덕 일어판도 나온다”

일제는 영친왕과의 연을 끊기 위해 민갑완을 결혼시키려고 갖은 공작을 했다고 한다. “고모가 (일제 공작 외에도) 훗날 세태가 달라졌으니 혼인하라는 권유도 많이 받았다고 해요. 구혼도 몇번 받았지만, ‘왕이 될 분하고 정혼했으니 파혼했어도 다른 사람이랑 결혼 못한다’며 평생 혼자 사셨어요.”(민병휘)

민갑완은 일제의 공작을 피해 1923년 남동생(민천식)과 함께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살다가 해방 이듬해인 1946년 동생 부부와 함께 귀국했다. 6·25가 터지자 아버지 고향 청주로 피난했다가 52년 부산으로 옮겨가 그곳에서 1968년 타계할 때까지 평생 동생 부부 및 조카 3남매와 살았다. 책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도 여러 구혼자 중 한 명이며, ‘고모에게서 이승만의 청혼 사실을 들은 적이 있다’는 민병휘씨의 증언도 들어 있다.

오구리는 이미 1980년대에 지인의 권유로 <백년 한> 복사본을 읽었으며, “일본 사람들이 이방자에 대해서는 아는데 민갑완이란 여성의 존재는 잘 모른다. 이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여 1985년부터 번역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1986년엔 서울의 출판사 문선각을 직접 찾아와 <백년 한> 원본을 구했으며, 민갑완의 삶을 좇아 2007년과 2009년 세차례에 걸쳐 상하이를 방문해 민갑완이 다녔던 학교(암마시여자중학교)에서 사진자료를 구해 이번 책에 수록했다.

<대한제국의…>에는 민갑완이 태어나던 해부터 시작하여 그가 ‘병판 아저씨’라 부르던 민영환이 을사늑약 뒤 자결한 일, 이태 뒤 황태자비로 간택되던 날, 1962년 회고록을 내기까지의 삶이 담담하게 기록돼 있다. 회고록 발간 뒤 71살로 타계하기까지의 삶은 출판사 지식공작소에서 취재하여 뒷부분에 수록했다. 페이지마다 사학자 문일웅씨가 내용을 고증하여 각주를 달아놓았다.

60년대에 회고록을 낸 계기에 대해 민병휘씨는 “1958년 6월 <동아일보>에 고모에 대한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던 일”을 꼽았다. “기사가 나간 뒤에 문선각 출판사 사람이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와서 자서전을 써달라 했어요. <동아일보> 기사가 날 때 제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그 기사를 보고서야 ‘아 우리 고모님이 이런 분이었구나, 이리 서럽게 사셨구나’ 하고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민씨는 1966년부터 동아대학교에서 행정직 업무를 하다 2002년 정년퇴임했다.

1960년대 초 당시 <백년 한>은 전후 어려운 상황에서도 즉각 베스트셀러가 됐다고 한다. “출간 즉시 3판까지 빠른 속도로 판매됐다고 해요. 출판사 문선각에서 ‘이렇게 살기 어려운 시절인데’ 하며 혀를 찼다고 해요.” 이듬해엔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민씨는 “영화 필름이 소실된 상태”라며 아쉬워했다. 백방으로 뒤져봤지만 찾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책이 반세기 만에 재출간되니 감개무량하다”며 “오구리 선생의 노력으로 머잖아 일본판도 나오니까, 그 역시 하늘이 준 인연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오구리는 “<백년 한> 번역은 거의 다 해뒀지만, 이번 재출간본을 대조하여 번역을 가다듬어 출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http://hani.co.kr/arti/culture/book/647849.html

hankyoreh20140721

One Reply to “한겨레신문 2014.07.22”

  1. One and a half year have passed since the publication of Min Kabwan’s autobiography in Korea. Now is the time for you to publish its Japanese translation. Not many years are left for you to work on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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