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에는 불교계 대학이 몇 개 있다. 그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대학이 류코쿠대학이다. 학생 수가 2만명이 넘는다. 1636년 정토신종 니시혼간지에 세워진 학료를 모태로 시작한 학교로, 역사도 가장 오래된 축에 속한다.
11월25일 이 학교 국제학부 박현국 교수의 초청을 받아, 학생들에게 강연을 하러 갔다. 박 교수는 <세계와 일본의 민속>이란 과목으로 수업을 하고 있는데, 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학생수는 100여명, 대부분 3, 4학년생이다. 물론 강연 의뢰를 받은 것은 두어 달 전으로, 한일관계가 매우 좋지 않은 시기였다. 주저도 됐지만 관계가 어려운 때일수록 젊은이들을 만나 대화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요청을 받아들였다. 다행히 강연 몇일 전 지소미아 문제가 타결되면서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갈 수 있었다.
강연 제목은 <한국과 일본의 우호촉진을 위하여>로 잡고 준비를 했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안중근 의사 붓글씨를 류코쿠대학이 소장하고 있고 오타니탐험대가 실크로드에서 수집된 유물 일부가 한국에 남아 있는 점을 들며, 한국과 류코쿠대학이 깊은 인연이 있다는 것부터 얘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좀더 범위를 넓혀 교토로 확장하면, 고대 백제,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 및 근대의 조선통신사, 윤동주, 귀무덤, 우키시마마루 폭침 사건 등까지, 한국과 교토와는 좋은 면, 나쁜 면을 포함한 교류가 끊임없이 이어져왔음을 강조했다.
결론적으로, 이렇게 두 나라 사이에는 가깝고 비슷한 면이 많지만 너무 비슷해 오해하기도 쉽다면서 서로 차이를 인정하고 상호 협력해 이익이 될 수 있고 세계평화와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에 국경을 넘어 연대해 나가자는 말로 강연을 끝냈다.
처음 강연을 시작할 때는 분위기가 산만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강연 내내 학생들이 집중력을 가지고 경청을 해주었다. 강연 뒤 학생들이 질문을 하나도 하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했는데 남녀 학생 3명씩 6명이나 질문을 했다. 물론 의외로 많은 학생이 질문을 한 데는 미리 준비해 간 ‘질문자용 선물’도 조금은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질문의 내용도 한일 우호를 위한 젊은이의 역할, 매스컴 보도의 문제, 안중근 의사처럼 한일 사이의 역사적 평가가 다른 문제, 한일 스포츠 경기 때의 과도한 민족주의 분출, 한국 연예인의 자살 문제, 언론인 출신으로 정부 일을 하면서 느낀 점 등, 다양하고 깊은 내용이 많았다. 그만큼 젊은 학생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하며 기분좋게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