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격동하는 한반도를 둘러싸고: 동아시아의 과거・현재・미래

교토시에 있는 공익재단법인 교토시국제교류협회가 주최하는 연례 포럼 <저고리와 기모노>가 있다. 일본에 살면서도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말할 기회가 없었던 재일동포 1세, 2세의 얘기를 듣자는 차원에서 1993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20회를 맞은 2013년부터 재일 또는 한일관계와 관련이 있는 사람을 초청해 대담하는 형식으로 바꿔 시즌2를 실시하고 있다. 26회째인 올해는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를 감안한 듯, <격동하는 한반도를 둘러싸고~동아시아의 과거・현재・미래~ >를 주제로 잡아 2월23일과 3월2일 연속 포럼을 연다.

나는 영광스럽게도 23일 포럼의 대담 게스트로 초대를 받아 참석했다. 대담 제목은 <한국의 문 정부가 몰고온 것>, 대담 진행자는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였다. 오구라 교수는 서울대 철학과에서 한국철학을 공부하고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조선사상전사> 등의 책을 쓴 지한파이다. 청중은 60명 정도인데, 절반 정도가 재일동포, 나머지 절반이 일본인인 듯했다.

한일관계가 강제징용 판결을 비롯해 여러 가지 일로 악화되어 있는 때여서 매우 부담되는 포럼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어려운 때일수록 직접 시민들과 만나 한국 쪽의 얘기를 전하는 게 의미가 있다는 생각으로 요청에 응했다.

실제 날이 닥치니, 말 한마디가 풍파를 일으킬 수 있는 예민한 상황인지라 긴장도 되고 괜히 응했나 하는 후회스런 마음도 생겼다. 포럼 장소인 교토국제교류회관은 난젠지 부근의 풍광이 좋은 곳에 있고, 봄 기운이 물씬 풍기는 날씨였지만, 이런 것도 긴장을 풀어주기엔 역부족이었다.

대담은 처음엔 언론인 출신으로 외교관이 되게 된 배경 등 개인적이고 부드러운 주제로 시작되는 듯했지만, 바로 문재인 대통령은 반일인가, 3.1절 100주년으로 한일관계는 더욱 어려워지는 것 아닌가 등등 점차 난이도가 높은 쪽으로 이동했다. 물론 위안부 문제, 강제동원 판결, 북한 핵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문제와 일본의 역할, 양국의 매스컴 문제, 재일동포 역할 등 뜨거운 문제도 화제에 올랐다. 대담도 대담이지만, 질의응답 시간에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교토 사람답게 곤혹스런 질문이
더욱 많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어떤 질문도 피하지 않고 한계 안에서 최선을 다해 답변한다는 자세로 임했다. 지금의 한국정부를 반일친북이라고 보는 일본의 시각은 잘못되었다는 것, 강제동원 판결 갈등은 식민지 지배에 대한 성격 규정을 회피한 채 맺어진 1965년 한일협정의 모순이 드러난 것으로 해결이 만만치 않다는 것, 한반도 평화 정착에 일본의 역할이 중요하고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라는 등의 의견을 밝혔다. 또 한일이 지금은 어려운 관계에 있지만 공통된 요소와 가치가 많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관계가 좋아질 것이고, 그렇게 되도록 서로 노력하자고 말했다. 재일동포들에겐 한일관계 악화로 어려움에 처하게 해 미안하지만, 이제까지 불굴의 정신으로 일본사회의 어려움을 이겨왔듯이 같이 힘을 합쳐 이번 어려움도 이겨 나가자고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3시간 동안 긴장 속에서 포럼을 끝내고 나니, 그래도 피하기보다는 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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