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7일은 교토의 이비총(미미하나즈카)에서 위령제가 열렸다. 한국의 사단법인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가 2007년부터 시작했다. 2008년은 사정이 있어 열리지 못했다. 그래서 올해가 11번째이다.
한국에서 박성기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이사장 등 관계자 10여명을 비롯해, 교토와 오사카 민단 간부 및 동포들, 일본의 시민 등 150여명이 참가했다. 오사카총영사관에서도 나를 포함해 3명이 참석했다.
절기로는 입동인데도 여름 날씨를 방불하는 따까운 햇살이 피부를 찌를 정도였다. 노천에서 1시간 반동안 치러진 위령제는 시종 엄숙한 분위기가 지배했다. 나는 추도사에서 ‘1600년에 이르는 한일관계 속에서도 이비총은 매우 슬프고 아픈 역사를 상징한다. 우리가 오늘 이런 역사를 추도하는 것은 이런 비극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한일 모두 아픈 역사를 극복하고 힘을 합쳐 우호와 협력을 위해 나가자’는 취지로 말했다.
이비총에는 임진왜란 때 일본 침략군이 전공을 셈하기 위해 가져온 12만명 정도의 귀 또는 코가 묻여 있다고, 옆자리에 있던 박 이사장이 설명해 주었다. 교토뿐 아니라 후쿠오카, 오카야마, 가고시마에도 이런 묘가 있다고 한다. 당시의 인구를 감안하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비극이다.
이비총의 위치도 참 묘한 곳에 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모신 도요쿠니신사의 아랫쪽 왼편 낮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또 이비총의 봉분 위에는 큰 돌 5개가 탑처럼 놓여 있다. 박 이사장은 마치 도요토미를 모신 신사가 왕이 앉는 자리라고 한다면 신하가 앉는 곳에 이비총이 있고, 더구나 그 위에 큰 돌을 얹어 놓아 원혼이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듯이 되어 있다고 말했다.
위령제가 이뤄지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일본에서 원혼이 된 채 묻혀 있다는 것이 마음을 아프게 했고, 또 최근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로 일고 있는 일본 안의 이상기류가 과거의 아픈 역사를 불러냈기 때문이다.
과거의 아픈 역사를 교훈 삼아 이런 비극이 재발되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이비총의 기억과 추모는 계속 이어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