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일 저녁과 10일 오전 연달아 강연을 했다. 외교관이 하는 주요한 일 중의 하나가 주재국 인사나 국내에서 방문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연설이나 강연을 하는 것이지만 이런 식으로 연달아 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강연, 연설을 비교적 자주 할 수밖에 없으니 담담하게 맞이할 것 같지만, 어느 연설이나 강연이든 준비하는 과정은 항상 힘들고 떨린다.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같은 주제라도 표현이나 강조점을 달리 할 수밖에 없다. 지루하지 않으면서 전하려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해야 하니, 전체의 흐름을 구성하는 데 신경을 많이 쓰지 않을 수 없다.
첫번째 강연 대상은 오사카부 의회의 한일친선의원연맹 소속 의원들, 두번째는 한국에서 수학여행 온 고등학생들이었다. 의원들이 의뢰한 강연 제목은 “한국과 오사카의 우호 촉진을 위하여”였고, 학생들을 상대로 한 강연 주제는 “글로벌 리더십”이었다.
오사카부 의회는 보수성향의 오사카유신회, 자민당, 공명당 소속이 절대다수이다. 반면 재일동포가 많이 사는 오사카의 특성상 친구나 사업, 학교, 음식, 문화 등 한국과 관련한 한두 가지의 화제는 꼭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들을 대상으로는 백제와 신라 시대부터 지금까지 교류의 역사와 사례를 들면서, 한국과 오랜 역사가 축적된 이곳의 자산을 살려 한일우호의 견인차가 되자는 메시지를 보냈다.
한국의 고등학생들에게는 현재 오사카를 찾은 많은 수의 한국 젊은 관광객, 한국의 케이팝과 음식을 즐기는 일본 젊은이들의 모습을 전하며,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경을 하는 것에서 한 발 더 안쪽으로 들어가 상대의 문화, 역사, 생활을 아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두 강연을 마치고 곰곰히 생각해 보니, 전체로 보면 같은 내용을 순서만 달리해 얘기한 셈이 됐다. 오사카부 의원들에게는 과거의 인연으로 시작해 현재로 이야기를 풀었다면, 한국 고등학생들에겐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얘기를 했다.
부의회 의원들을 상대로는 과거의 역사부터 시작하는 게 얘기를 부드럽게 풀어나가는 데 좋을 것이란 생각을 미리 했지만, 학생들에겐 아무런 생각 없이 얘기를 시작했는데 말이 현재부터 과거로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어떤 식으로 얘기를 풀어 가든 중요한 것은 청중이 화자의 말에 얼마나 호흡을 같이 하느냐일 것이다. 변변치 않은 경험이지만 준비 과정에서 메시지, 핵심 단어, 얘기 순서, 사례 등을 놓고 고민을 많이 하면 할수록 공명 효과가 커지는 건 분명한 것 같다. 그래도 끝나면 항상 부족하고 아쉬운 게 연설이고 강연이다. 마치 시시포스의 돌처럼, 아무리 밀어올려도 자꾸만 밀려내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