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발표 시기가 시작되면서 1일 저녁 가장 먼저 발표된 노벨 의학생리학상 공동 수상자에 일본학자가 포함되었다. 세포의 면역체계를 이용해 암을 치료하는 길을 튼 혼조 다스쿠 교토대 특별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일본인으로서 노벨상을 타는 것이 24번째(물리 9명, 화학 7명, 의학생리 5명, 문학 2명, 평화 1명)여서 그리 놀랄 일도 아닌 것 같지만, 일본 전체가 환영 분위기로 들썩이고 있다. 노벨상의 권위가 그만큼 크다는 뜻도 될 것이다.
그중에서도 간사이지역의 열기는 더욱 뜨겁다. 수상자가 교토대 교수이고, 혼조 교수의 연구 성과를 치료약(오푸지보)으로 만들어 생산하고 있는 회사가 오사카에 본사가 있는 오노약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지역 사람들이 흥분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혼조 교수의 면역을 이용한 암 치료 방법 개발은, 감염증에 대한 페니실린의 발명과 필적한다는 전문가들의 평가가 나오는 것을 보면, 대단하긴 대단한 모양이다. 그동안 암은 수술, 방사선, 항암제의 세 가지로 치료를 해왔는데, 면역치료 방법이라는 새 치료법이 더해졌을 뿐 아니라 암 정복의 가능성까지 열었다는 것이다.
이런 훌륭한 성과도 성과이지만. 나의 관심은 줄기차게 노벨상, 그것도 자연과학 분야에서 수상자를 배출하는 일본의 저력이다. 혼조 교수는 수상자로 발표된 뒤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상이란 상을 주는 단체가 독자의 기준으로 정하는 것이다. 이 상을 받으려고 오래 기다렸다든가 그런 생각은 없다.” “(나의 모토는)호기심과 간단히 믿지 않는 것. 확신할 때까지 한다. 내가 머리로 생각해 납득할 때까지 한다.” 또 이런 말도 했다. “중요한 것은 알고 싶다는 것,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중시하는 것, 교과서에 나오는 것을 의심하고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혼조 교수의 이 말들에 답이 있다고 본다. 여기에 하나를 더하자면, 이런 탐구심이 발휘되도록 오랜 기간 기다리면서 지원해 주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한국은 이런 기본적인 토대의 차이는 보지 않고 경제의 압축성장처럼 핵심 분야 몇 곳을 선정해 돈을 집중 투자하면 바로 노벨상을 탈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심지어 일부 사람들은 이곳 대학에 찾아와 ‘일본은 한국보다 영어 실력도 약한데 어떻게 노벨상을 많이 타느냐’고 묻기도 한다. 어이상실이다.
그런데 부임 이후 이곳 대학들을 방문해 학장들을 만나 보니 많은 분들이 ‘이제 몇 년 뒤부터는 일본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푸념을 한다. 일본 대학에도 최근 효율과 성과를 중시하는 풍조가 지배하면서 시간 들고 성과가 불확실한 기초분야를 경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란다. 우리는 어떤가. 할 말이 없다.